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령 알제리 (문단 편집) === 알제리 점령 === 알제리 일대는 이슬람화 직후부터 유명한 [[바르바리 해적]]의 근거지가 되었다가 1516년 마침내 [[오스만 제국]]의 속국이 되었다. 오스만 치하에서는 명목상의 총독이 있었지만 상당부분 자치적인 형태를 띄었다. 오스만 제국이 강성했을 때는 바르바리 해적들이 [[지중해]]에서 대놓고 노략질을 일삼으며 나름 세력을 떨쳤지만,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먹구름이 꼈다. 이를 틈타 서구 열강들은 유럽 본토를 괴롭히던 바르바리 해적을 공격해 쫓아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[[부르봉 왕정복고|프랑스 왕국]]의 국왕 [[샤를 10세]]는 아예 바르바리 해적의 근거지가 되는 북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점령하기로 마음먹었다. 때마침 당시 [[오스만 제국]]의 알자자이르 총독 후세인 이븐 파샤가 자신을 능멸한 프랑스 외교관 피에르 디발(Pierre Deval)의 뺨을 [[파리채]]로 때린 것을 계기로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과 후세인 이븐 파샤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이것이 거절당하자 이를 구실로 프랑스 왕국은 군대를 보내 알자자이르를 점령했고 후세인 이븐 파샤는 항복했다. 이로서 [[바르바리 해적]]은 완전히 토벌되었고 프랑스는 복아프리카 서부 지중해 해안을 지배할 수 있었다. 그리고 이 지역에 주요 도시인 '알자자이르'의 프랑스어명 '[[알제]]'를 따 '[[알제리]]'라는 이름을 붙이고 통치했다. 아이러니하게도 알제리 정복을 주도한 샤를 10세는 프랑스군의 주력 상당수가 알제리로 가 있는 틈을 타 프랑스 본국에서 [[7월 혁명]]이 일어나는 바람에 왕 자리에서 쫓겨났다. 새로 등장한 [[7월 왕정]] 초반 샤를 10세가 주도한 프랑스령 알제리의 통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통치하기로 결정했다. 초기에는 지중해 해안 일대에서 출발한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은 식민 지배 기간 내내 계속되었는데 [[모로코 왕국]], [[베르베르인]], [[투아레그인]] 등 내륙의 유목민들을 물리치면서 사하라 사막 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1936년에 현재의 국경이 확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